묶여있는 시간의 의미

몇 주간 어려운 시간이 흘러갔다

개인적으로 이 시간을 묶인 시간이라 정의하였다

가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멈추어있고

이해할 수없을 만큼 욕망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일을 할 수 없는

낭비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안의 짐승처럼

마음의 터널에서 묶여서 낮은 자존감으로

사람을 기피하고 피해다니고자 했던 시간

그러한 시간이 있다.

 

음란의 욕망도 이와 같아서

마음속에서 참으로 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간다.

오만 환상이 지나가고 위로를 하려해도 결국 결론은

설명할 수 없는 낮은 존재감 괴로움 그리고 수용되지 않는 피해의식들만 남는다.

 

이러한 시간은 왜 오는 것이며

무엇을  의미할까?

 

그동안의 시간은 이러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것일까

한가지 알게 된것은 사람또한 자연의 일부분으로써

자연의 영향을 받을 수 받게없다는 것이다.

바람 비 온도 날씨 계절 기후 절기 등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자연성이 오고가는 근간에

무언가 다른것이 계입한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

어떤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대상은 어쩌면 나의 자각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남과 다르다는 생각은 우리의 뿌리 깊은 본능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모순 까지 제거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아담들

그 죄인들 다윗과 솔로몬과 수 많은 이스라엘의 죄와 그 모든 행태들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한가자 동일한 점은 모두 죄인 아담의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성경의 사람들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한다는 뜻은

바로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된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죄없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되어야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알아보시고 그가 우리를 향해

“내가 이자를 나의 피값으로 산 자입니다” 라고

증거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은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세리와 가난한 과부와 같이 취급받는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죄에 있어서 또 의에 있어서도 그들과 구별되는 족속으로 생각한거 같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그들보다 죄의 문제에 있어서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결과 예수그리스도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못밖는 사람이 된것이다.

 

나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면 되는 것을

배드로가 나는 죄인이니 멀리 떠라나고 고백한 것처럼 그러면 될 것을

왜 그들은 죄를 인정하지 못했을까?

 

종교의식과 율법이 사실 그들을 망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전통적 계승이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 되었을때

예수님은 그들의 권력을 발로 밟고 하찮은것으로 여기신 것이다.

 

십계명에 너희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처럼

자신을 위하여 자신의 신을 만들때

자신의 의가 자리를 차지할때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죄 라는 심판을 내린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진정 죄인인 아담의 자손임이 증명된 것이다.

사람은 결국 인간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들임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입증된 것이다.

이는 결국 성경의 진실을 입증하는 의미와 같다.

 

결국 성경의 말씀은 기록된 대로 입증되었고 이루어 졌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교회는 권위를 세우고 의의 바벨탑을 계획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밝으시고 파하시고 흩으신다.

이러한 모순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또 확장되어져왔다.

그분의 뜻을 십자가 사건과 같이 이루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남과 다름을 믿을때

나의 죄가 경해졌음을 믿을 때

내가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 있음을 믿을 때

내가 성경의 그 누구와도 유사하지 않고 그 성경에 나오는 허다한 죄가

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 될때

결국 내가 나의 인격이 그들과 구별된다고 생각할때

나의 죄는 그 율법속에서 더 욱 드러나게 되어있다.

모든 욕망은

그 남과 다른 분리된 존재인 나에게서

의로움이 있는 존재인 나에게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내가 죄 됨을 더욱 더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나의 영의 상태는 내가 판단하고 알 수 없기에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내 자신을 조절하기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결국 답은 회계

그 성경의 수많은 죄의 사람들과 그 모습들이

다 나에게 있다는

인정

다 나의 인격속에 숨어있다는 인정

그 성경의 얘기가 사실 나를 말하고 있는

숨겨진 나의 진실이라는 인정

나의 인생자체이며 숨겨진 과거라는 인정

그 동일함에 대한 깨닮음이 사라질때 생기지 않을까?

 

지금도 나는 그와 같은 죄인이고

다윗과 같은 또는 압살롬과 같은 죄인이고

그 죄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인정속에

로마서의 바울의 서신에서처럼 은혜

오직 주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음을 고백하는 훈련

그러나 내가 죄없음을 내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곧 그리스도의 영께서 만이 하실 수 있다는 인정이

나를 위한 우상을 내안에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파하는 길을 인도하시는 이에게

약속하신 이에게 모두 보일 수 있음을 …..

 

삶은 어렵고 어려운 것 같다

묶여있는 시간은

회계의 시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주여 내 발을 붙잡으사 이곳에 서 있게 하소서

고백과 같이

 

지금 이곳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고 일어나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우리에 대한 소망이

주님의 우리에 대한 비젼의 점검이 내 안에 필요함을

어떠한 전환의 계기점이 인생에 필요함을

말씀하시고 계신것은 아닌지

민감하게 생각하고 기도해야할 시점이라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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